프로테스트 대회개요 칼럼
  • 칼럼

칼럼

컬럼 상세보기
제목 2019 6차 "이제 다시, 나와의 싸움을 피하지 않겠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1-06 14:36:54 조회수 244
2019 6차 "이제 다시, 나와의 싸움을 피하지 않겠다" 2019-11-06

처음으로 퍼펙트 챔피언에 올랐다. 소감을 부탁한다.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래 걸렸다. 국내외 대회에서 수도 없이 많은 트로피를 받았지만 퍼펙트에서는 성적이 안 나왔다. 3년동안 결승 진출이 세 번이라니. 프로화가 되면서 선수들 실력이 좋아졌고, 나는 정체했다. 지금껏 배출된 챔피언이 7명이다. 이제라도 낄 수 있어 다행이다.

퍼펙트를 출범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는데…

2007년 한국 포인트 1위 자격으로 일본 퍼펙트에 출전했다. 개막 전날 대회장에 늘어선 머신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저런 무대의 주인공이고 싶었다. 다트선수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고, 몇 달 후 피닉스다트에 입사했다. 퍼펙트 한국 유치를 꾸준히 제안했고, 결국 10년만에 출범했는데 주인공이 되는 건 좀처럼 허락하지 않더라.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걸로 안다

프로 다트대회가 생기면 한 가운데 자리에 있고 싶었다. 막상 퍼펙트가 생기니 나는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주변의 기대도 알고, 응원해 주는 분들도 많은데 이제야 인사를 드려서 죄송하고 감사하다. 많이 부족했다.

개인전에서 우승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하나

2년 전 용쟁호투 클래식? 피닉스 공식대회는 2015년이다. 마스터즈 프리미어 1차전과 2차전을 연거푸 우승했고, 바로 열린 파이널40 토너먼트까지. 거기서 그쳤다. 그 해에 팀장으로서 피닉스리그(POL) 우승도 했다. 제2의 전성기가 왔다고 하던 때인데…. 너무 오래 됐다.

6차대회 때 컨디션이 좋았나

우승까지는 뜻밖이었다. 전날 연습할 때, 참 안 맞는다 싶었다. 아침에 경기장에서 몸을 풀 때는 아주 좋았다. 예선에서 류성희에게 2:0으로 졌고 다른 게임도 쉽게 이긴 게 없다. 토너먼트 첫 게임 최경태와 경기도 어렵게 시작했다. 근데 위로 올라갈수록 감이 좋아졌다.

우승을 향하는 길목에 고비가 있었을 텐데

서병수와 3:2까지 갔고, 다른 누구 한 명 쉬운 사람 없었다. 최경태는 특유의 리듬 때문에 맞추기 힘들었고, 정지원과는 32강 징크스가 신경 쓰였다. 서병수에게 지면 헤어나기 어렵겠다는 부담, 그날 연습상대였던 임병주도 컨디션이 좋아 맘을 놓을 수 없었다. 정환일은 처음 4강에 들 만큼 페이스가 좋고 전주대회 때 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승전 2세트 1레그까지 잡아놓고 연달아 질 때 어떤 생각 들었나

2세트 역전패했고 결승세트 1레그 졌을 때,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안 좋은 상상도 했다. 경기 내내 응원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흔들릴 것 같았다. 01과 크리켓 모두 20이 싱글에만 맞으면서 고전했다. 3세트 3레그는 행운이 따랐다. 디들을 실패했는데 올리버가 2비트 정도 더 벗어났다. 선공을 택했다. 7라운드에서 T17에 이어 T16 들어갔을 때 울컥했다. 그때 이겼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승이 확정되자마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힘이 풀렸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눈물이 났다. 주인공이고 싶었던 퍼펙트에서 주변인이 되어 있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스쳐갔다. 잊혀지는 느낌이고. 막 입문한 플레이어들은 고준이 누구지? 왜 레전드라고 하지? 새로 생긴 숍에 가면 나는 피닉스 영업팀장일 뿐이다. 다트를 그만 할 생각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이제 큰 짐 하나 덜었다.

다트와 고준은 동의어다. 그만 둘 생각을 했다고?

많이 했다. 고민 하나 생기면 푸는 데도 오래 걸리고, 인터뷰 기사 밑에 달린 작은 악플도 신경 쓰이고… 5년 전쯤인가, 우울증 비슷한 것도 앓았다. 석 달 간 아무 것도 않고 쉬니까 좋아 지더니, 금세 또 내가 다트를 왜 하고 있지? 그런 생각 들고, 다 그만 두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조언에 다트를 다시 쥐고… 여러 번 반복했다.

좀처럼 우승할 수 없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마음가짐이다. 스스로 방어막을 치고 도망갔다. 예전에는 4강 안에 못 들면 화가 났는데, 이제는 32강에서 떨어져도 쉽게 인정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말 해왔으면서 정작 나는 간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 자신과만 싸운다고 말했는데 그 싸움이 두려워 피했다. 스포츠에서 자신감은 연습량이다. 연습도 못했는데 되겠어? 준비를 못 했다고 변명할 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내 경기를 보는 사람도 예전 같은 오라(aura)가 없다고 하더라. 나도 느꼈다.

내가 우승하면 안되다고 말한 게 그 때문인가

준비 안된 사람이 우승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높은 자리 올라가야 한다는 얘기다. 나 스스로 부끄럽기 때문에 우승하면 안되다는 애기다.

연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가진 선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밖에서 보면 그리 생각할 수 있다. 머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좋은 환경 아닌가. 나도 압구정501에서 근무할 때가 최고 전성기였다. 내가 머신 회사에서 근무하는 거지, 머신 옆에 있지는 않다. 날 아는 사람들은 그런 얘기 안 한다.

그래도 힘이 되는 것도 있으니 이런 결과를 냈겠지

내가 침체된 기색이라도 보이면, 그럼 다 같이 다트 그만 하자는 후배들, ‘우승 해주세요!’, ‘누가 뭐래도 형이 최고입니다!’ 같이 말이 용기를 주었다. 우승 후에 지방의 한 딜러가 ‘고맙다’고 하더라. 지난 10년간 지역 플레이어들에게 고준이 한국에서 최고다, 모르는 사람들에는 동영상 보여주고 선전했다는데 내가 성적을 못 내니까 빈말이 돼버렸다. 이번에 최고를 인증해줘서 고맙다고… 이런 게 힘이 된다.

이번 챔피언 등극은 다트 인생에 전기가 될 것 같다

또 2위였다면 내상이 컸을 거다. 결승 시작 전에도 여기서 우승 또 못하면 이번엔 정말 다트를 그만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올라오려면 10번 가까이 이겨야 한다. 솔직히 또 언제 이 자리에 있을지 모른다. 이런 기회에 꼭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퍼펙트 결승전 세 번 했는데, 심적 부담이 제일 오래 지속됐다.

페북에 엄청난 댓글이 달렸다. 말없이 응원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감사합니다’는 말만 했다. 사람들이 오히려 나한테 고맙다고 해서 고마웠다. 축하해요!보다 고마워요!라는 멘트가 좋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그들도 원했던 것 같았고, 그것을 이룬 것은 여러분 덕분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제까지 나와의 싸움을 피한 것이 죄송하고, 모든 이에게 감사한다. 다트를 대하는 마음을 다시 바꾸겠다.

이전글 제목, 이전글 작성자, 이전글 작성날짜, 다음글 제목, 다음글 작성자, 다음글 작성날짜로 이루어진표
다음글 2019 7차 "랭킹1위 못했지만 최종전 2승은 큰 성과"
이전글 2019 5차 "세 차례 건너뛴 우승, 이 악물고 던졌다"